의령의 땅 이름 유래와 역사이야기(17)
의령의 땅 이름 유래와 역사이야기(17)
  • 김진수 편집위원
  • 승인 2022.10.12 16: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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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의 땅 이름 유래와 역사이야기’는 허백영 문화원장님이 쓴 ≪우리고장 땅 이름≫과 박용식 교수가 쓴 ≪宜寧의 地名≫, 1930년대 발간된 ≪의춘지≫, ≪의령군지≫를 참고했다.

 

사진=의령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김진수
사진=의령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김진수

□의령읍 하리(下里) 성남(省南)마을

‘성남(省南)’은 의령읍 하리(下里)의 행정마을이다. 토박이들은 ‘비성골’ 혹은 ‘비신골’로도 부른다. 성남마을은 의령읍과는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덕곡리 초입에 위치해 있고 마을 길가에 큰 비석이 여러 개 서 있었다. 그래서 ‘비(碑)가 선 골’이라는 의미로 ‘비선골/비신골 혹은 비성골’로 불렸다. 이것을 한자로 적으면서 비성곡(飛省谷)이라 했다. 당초 비석의 의미는 사라지고 ‘날다’라는 의미로 바뀌어 비성곡(飛省谷)이라는 지명이 생긴 것이다. 옛날 마을 길가에 즐비하게 서 있던 비석은 지금은 없다. 이 비석들은 의령지역의 다른 비석들과 함께 의령읍 동동 삼거리에 모아 세워두었다.

또한 성남 마을을 ‘성안골’ 혹은 ‘서언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는 이 마을에 덕곡서원(德谷書院)이 있기 때문에 ‘서원골’이라 불렀으나 세월이 흘러 발음하기 편하게 ‘서언골/성안골’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재미있는 지명 유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남(省南)’이라는 이름을 정한 것은 생뚱맞다. 그러나 마을 입구의 덕곡서원(德谷書院)이 정돈되고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마을에 특별한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덕곡서원(德谷書院)

사진 =덕곡서원 행사 모습
사진 =덕곡서원 행사 모습

의령 덕곡서원(德谷書院)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31호(1985.11.07.)이다. 이 서원은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경상우도 지역에서 유일하게 이황선생을 향사하고 있다.

퇴계선생은 조선 중기 학자이며 그의 학문은 조선조 유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고 그의 제자들이 퇴계 학파를 형성했다. 퇴계 선생의 첫째 부인인 허씨 부인의 고향이 바로 의령 가례다. 그는 처가를 수차례 방문했고 방문할 때마다 의령지역 선비들과 교유하며 지방 유학을 융성케 했다. 의령 현감 윤순거(尹舜擧)가 1654년(효종 5)에 퇴계선생의 학덕을 흠모하여 서원을 세웠고, 1660년(현종 원년)에 나라에서 내린 ‘덕곡(德谷)’이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하지만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하여 서원은 모두 파괴되었다. 그 후 1902년에 유림들이 강당과 솟을대문을 복원하였고, 또 1992년 사당인 경덕사(景德祠)를 복원하였고 2005년과 2012년에는 서재와 동재를 복원하였다. 덕곡서원 옆을 흐르는 시내를 (현재 의령천) 옛날에는 금정천(黔丁川)이라 불렀다. 이 시내 위쪽 바위벽에는 퇴계선생의 친필 암각문인 ‘퇴도암(退陶巖)’있다.

 

○퇴도암(退陶巖)

사진=퇴도암 암각문 모습
사진=퇴도암 암각문 모습

의령에는 퇴계선생이 남긴 친필유묵 3점이 있었다. 이 친필유묵 가운데 첫 번째는 의령군 가례면 우곡동산(牛谷東山)의 바위벽에 새긴 ‘서암(書巖)’이라는 암각문이다. 그러나 이 암각문은 서암 저수지 공사과정에 훼손되어 지금은 없다. 두 번째는 가례면 가례마을 바위에 새긴 ‘가례동천(嘉禮洞天)’ 네 글자가 있다. 마지막으로 덕곡서원 옆 금정천(黔丁川) 위쪽 바위벽에 ‘퇴도암(退陶巖)’이라 새긴 암각문(巖刻文)이 있다. 이 세 글자는 초서체로 한껏 멋을 부린 글씨로 바위벽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글자가 있는 바위의 윗부분이 모자처럼 씌워져 있고 움푹 들어간 부분에 글자가 음각되어 있어 비바람의 풍화를 받지 않아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이 암각문이 있는 바위 옆으로 산책로가 조성중인데 완성되면 편하게 이 암각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앙대수창기념비(景仰臺酬唱紀念碑)

‘퇴도암’ 암각문이 새겨진 바위 아래 금정천(黔丁川) 가에는 단기 4312년 기미년(1979)에 의령지역 유림 지도자 권대도(權大道)외 15명이 모여 세운 경앙대수창기념비(景仰臺酬唱紀念碑)가 있다. 의령 지역의 유림이 모여 퇴계선생의 학덕과 인품을 기리고 흠모(景仰)하여 모여 시를 짓고 노래(酬唱)한 것을 기념하여 이 비석을 세운 것이다.

이 비석의 전면에는 ‘景仰臺酬唱紀念碑(경앙대수창기념비)’ 라 쓰여 있으며 오른쪽 면에는 檀紀四千三百十二年 己未五月 日 靑松沈相碩 書 라고 쓰여 있다. 비석의 왼편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필자번역).

前合雙溪水전합쌍계수 :앞은 양 물줄기가 합하고

後臨萬仗山후임만장산: 뒤는 높은 산이 버티고 있고

退溪遺躅在퇴계유탁재: 퇴계선생이 남긴 자취가 남아 있으니

景仰千秋間경앙천추간: 선생의 덕을 영원히 사모하고 우러러 보리

이 비석은 자굴산에서 흘러내리는 금정천(黔丁川)과 벽화산에서 흘러내리는 남산천이 합류하는 지점 위쪽 시냇가에 있다. 옛날에는 이곳을 잠천 혹은 잠내라 불렀으며 물가에 평평한 바위가 있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퇴계선생의 친필 유묵인 ‘퇴도암’ 암각문이 새겨져 있는 바위 아래 냇가에 비석이 있다.

비석의 뒷면에는 모임에서 지은 시와 참여한 사람 명단이 있다. 현재 글자를 판독하기 어렵다. 탁본하여 비의 내용을 밝히는 것이 과제이다.

 

○혜림학원

사진 =혜림학원 설립자 부부 및 직원, 원생 모습
사진 =혜림학원 설립자 부부 및 직원, 원생 모습

덕곡서원 옆에는 사회복지법인 혜림학원이 있다. 이 시설은 1957.10.5 의령읍 하리에서 건물 2동을 매수하여 고아 10명을 돌보면서 시작했다. 음악을 사랑했던 설립자 고 김선영 장로님은 아이들의 정서함양을 위하여 합창단을 조직하여 노래를 가르쳤다. 우수한 교사를 초빙하여 노력한 결과 1961.11.15 제 12회 개천 예술제 합창 경연대회에서 혜림합창단이 최우수상에 해당하는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상을 수상하였다. 합창단은 전국 순회공연을 하고 음반을 내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원생들의 직업기술훈련의장으로 풍금공장과 가구공장을 설립하여 기술을 가르쳐 앞길을 개척케 하고 생산된 풍금은 지역사회의 열악한 시골학교에 보냈다.

 

○건네골먼당

‘건네골먼당’은 성남 서쪽 건너편에 있는 구룡산에서 흘러나온 산등성이이다. 이 건네골먼당에는 일제강점기 동안에 금을 캐기 위하여 금광을 뚫었고 아직도 그 흔적이 여기 저기 남아있다. 또한 필자가 중학생 때 매년 가을이면 학생들의 호연지기를 길러주기 위해서 토끼 사냥을 갔다. 어느 해는 바로 건네골먼당에서 토끼몰이 사냥을 했다. 토끼가 뒷발이 길고 앞발은 짧아 위쪽으로 올라가기는 잘 하지만 아래로 내려가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이용하여 토끼를 산 위쪽에서 아래로 몰아 사냥하는 방식이다. 이곳을 지나칠 때면 학창시절 토끼를 쫒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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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림 2022-10-12 23:20:17
의령의 땅과 함께한 학창시절 추억이 아름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