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의 땅 이름 유래와 역사이야기(4)
의령의 땅 이름 유래와 역사이야기(4)
  • 의령 인터넷 뉴스
  • 승인 2022.03.14 15:1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에게 이름이 있듯이 땅에도 이름이 있다. 땅 이름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세상을 보는 방법, 독특한 자연환경, 고유한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땅 이름은 고장의 역사를 담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라 할 수 있다. 이 자산을 지키고자 의령의 땅 이름 유래와 역사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이 글은 의령문화원에서 펴낸 우리고장 땅 이름, 宜寧地名, 의춘지, 의령군지 참고했다.

 

◎의령 남산, 구룡산(龜龍山), 구룡산(九龍山) 이야기

사진=김진수 의령향토문화연구소
사진=김진수 의령향토문화연구소

의령읍 남쪽에 솟아있는 안산을 남산이라 부른다. 그러나 1872년 고종 때 제작된 의령 현 지도에는 이 산을 ‘거북과 용’의 산 즉 구룡산(龜龍山)이라 했고 다른 옛날지도에는 ‘아홉 마리 용’즉 구룡산(九龍山)으로 불렀다. 1930년에 펴낸 ≪의춘지≫에는 수월암(水月菴)을 소개하며 ‘구룡산(龜龍山)에 있다’고 하며 ‘거북 구’자구룡산이라 했다. 구룡산(龜龍山)을 살펴보면 산이 거북이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구룡산에서 남강을 따라 정암루 쪽으로 쭉 이어진 산줄기가 용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구룡산(龜龍山)이라 부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의령사람들과 슬픔과 기쁨을 같이 한 구룡산에는 여러 가지 문화유적이 많다.

 

○ 구룡산(龜龍山) 대나무 숲

사진=구룡산 대숲길
사진=구룡산 대숲길

구룡산에는 큰 대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다. 이 대숲은 황덕유(黃德柔)현감 때 조성된 것이다.

황 현감은 조선시대 명재상이었던 황희 정승의 9세손이다. 황 현감은 온유한 성품일 뿐 아니라 청렴한 현감으로 알려져 있다. 의령에 부임하여 읍민의 생활을 살펴 보니 사는 것이 형편없었다. 심지어 ‘아전들 집에도 쇠솥이 없는’(吏無鐵鼎) 형편이었다. 그래서 주위에 있는 산에 올라가서 지형지세를 살피면서 지맥과 지혈을 찾아보았다. 동헌 뒷산인 봉덕산(鳳德山)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니 봉황이 날아 들어오는(鳳凰來義) 지형으로 고을 읍지로는 썩 좋았다. 그래서 산에 나무를 더 많이 심게 하고 이름을 봉무산(鳳舞山)으로 고쳐 부르게 했다.

그런데 맞은편 안산(龜龍山)에 오동나무가 없으니 봉황이 깃들 수 없고 왕대가 없으니 봉황이 먹을 대나무 열매(竹實)가 없어 봉황이 기를 펴지 못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마을 한복판을 큰 도랑이 가로질러 흘러 수해가 끊이지 않고 읍민의 생활이 어려웠던 것이었다. 그래서 황현감은 우선 안산(龜龍山)에 대밭을 만들게 했고 산자락에 오동나무를 심도록 권장했다. 백성들을 시켜 물길을 서산 밑으로 새로 내고 도랑둑을 높이 쌓도록 했다. 그런 뒤로는 수해가 없어지고 농사도 잘되어 천석부자가 잇따라 생기고 만석꾼까지 생기는 명당길지(明堂吉地)가 되었다.

 

◎구룡산(龜龍山)의 나무와 참나무거위벌레

구룡산(龜龍山)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어우러져 있었지만 지금은 참나무가 세력이 우세하다. 참나무 중에서 상수리나무가 많다. 참나무의 열매인 도토리는 배고픔을 달래주는 구황식물(救荒植物)로서 귀중한 것이었다. 구룡산(龜龍山)의 상수리나무는 신비롭게도 의령들에 풍년이 들면 도토리를 적게 내고 반대로 들판에 흉년이 들면 도토리를 많이 내어 주었다.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으면 도토리로 배고픔을 면하라는 상수리나무의 배려이다. 그리고 비온 뒤 몽당 빗자루 같이 생긴 싸리버섯이 널려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아쉽다.

여름철 산을 오르다 보면 도토리가 달린 나뭇가지가 등산로에 떨어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도토리거위벌레가 한 것이다. 이 벌레는 별나게 긴 주둥이가 거위의 목처럼 생겨 도토리거위벌레라 불린다. 도토리에 주둥이로 구멍을 뚫고 산란한 후 몸길이가 채 1센티미터도 안 되는 작은 몸으로 모성애를 발휘하여 도토리가 달린 가지를 주둥이로 잘라 떨어뜨린다. 도토리 속에 들어있던 알은 5~8일이 지나면 유충으로 부화하여 도토리의 과즙을 먹고 산다. 6월 쯤 구룡산(龜龍山)을 산책할 때 길가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도토리거위벌레 유충을 확인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구룡산(龜龍山) 금석문

의령천 구름다리를 지나 수월사 쪽 작은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 바위 위에 쌓은 작은 성이 보인다. 그 이름은 농주대(弄珠臺)이다. 축성 날짜는 불기 2971년(1944) 7월이다. 바위면에는 축성에 참가한 사람들의 명단과 다음과 같은 글자가 적혀있다.

구룡산 농주대 청류동천

나무석가 아미타불 나무문수 보현보살 나무아미타불 보살 광명전 미륵 나무 관세음 보살 미륵 대방광 화엄경 법화경 증명나반 대성수호 팔금강 사보살 주산 서달문 농주대축성 공덕 춘강안삼동 불기 2971년 갑신 7월 일 수월암 초창 시주 심팔만택 삼강 이병후 허정규 심상염 개산주 청호실 김재규

 

九龍山 弄珠臺 淸流洞天

사진=구룡산 길상폭
사진=구룡산 길상폭

南無釋迦 阿彌陀佛 南無文殊 普賢菩薩 南無阿彌陀佛 菩薩 光明殿 彌勒 南無 觀世音 菩薩 彌勒 大方廣 華嚴經 法華經 證明那畔 大聖守護 八金岡 四菩薩 注山 徐達文 弄珠臺築成 功德 春岡安三同 佛紀 2971년 甲申 7月 日 水月庵 初刱 施主 沈八晩澤 三綱 李秉厚 許禎圭 沈相炎 開山主 淸浩室 金在圭 (원문 출처: ≪의령의 금석문화≫

그리고 맞은편 계곡 너머 반듯한 바위면에는 ‘길상폭(吉祥瀑)’ 세 글자가 해서체로 멋지게 새겨져있다. 높이도 높지 않고 여름철 비가 많이 내려야 폭포가 생기는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이렇게 이름을 붙이고 보니 ‘복을 많이 받을 조짐’(吉祥)이 보이는 듯하다.

 

◎구룡산(龜龍山) 고분

사진=구룡산 고분군
사진=구룡산 고분군

경상남도 기념물 제189호이다. 수월사를 비켜 산 정상으로 올라가면 오른쪽 경사면을 따라 4기의 큰 고분이 있다. 1호 고분에서 3호 고분은 약 10m 정도의 간격으로 일정하게 있으나, 4호 고분은 산 정상 쪽으로 약간 떨어져 있다.

이 고분군은 모두 심하게 파헤쳐져 아이들의 놀이터가 될 정도로 노출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1993년에 고분 전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1호 고분은 ‘구덩이식돌덧널무덤’ 즉 시신을 위에서 수직으로 넣도록 옆으로 트인 입구 없이 돌로 사방 벽을 짜 관으로 만든 무덤으로 밝혀졌다. 반면 4호 고분은 ‘굴식돌방무덤’ 즉 깬돌로 널을 안치하는 널방을 만들고 외부로 통하는 널길을 만든 뒤 흙으로 씌운 무덤으로 밝혀졌다. 1호 고분은 동서 17m, 남북21m, 높이 3.6m 정도의 비교적 큰 고분이다. 2호 고분, 3호 고분 역시 비슷한 크기이다. 약간 위쪽에 있는 4호 고분은 규모가 작은 편이다. 어린 시절 개구쟁이 놀이터가 멋지게 정비·복원된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의령의지명 #의령남산 #의령구룡산 #의령인터넷뉴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유림 2022-03-15 21:15:34
옛조상들이 백성들을 위해 대나무숲을 만든 일이 지금까지도 숲길이 되어 도움을 주고있네요~ 앞으로도 힐링 숲길로 거듭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