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림면 땅 이름 유래와 역사이야기8 (익구리(益口里) 구월(九月)마을)
부림면 땅 이름 유래와 역사이야기8 (익구리(益口里) 구월(九月)마을)
  • 김진수 편집위원
  • 승인 2023.07.2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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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의 땅 이름 유래와 역사이야기’는 허백영 문화원장님이 쓴 ≪우리고장 땅 이름≫과 박용식 교수가 쓴 ≪宜寧의 地名≫, 1930년대 발간된 ≪의춘지≫, ≪의령군지≫를 참고했다.
사진 = 김진수 의령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사진 = 김진수 의령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부림면 익구리(益口里) 구월/구래실/구래골/구래동(九月)마을

‘구월(九月)’은 부림면 익구리(益口里)의 행정마을이다. 이름이 특이하고 아름다워 그 기원이 궁금하다. 구월마을은 익구리 익구 마을에서 ‘익구저수지(益口貯水池)’위로 이름도 정겨운 ‘쇠죽골’ 골짜기를 한참 올라가야 나온다. 구월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원분지이다. 옛날에는 높은 산이 많아 땔감구하기가 쉽고 물도 좋아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통이 불편하여 사람들이 외지로 나가고 마을은 빈집 같다. 마을 들머리에는 ‘덤바위’가 머리를 내밀고 있고 대숲이 마을 주위를 울창하게 감싸고 있으며 사방 산에는 울창한 숲이 둘러싸고 있다.

사진 =구월마을 전경
사진 =구월마을 전경

토박이들은 이 마을을 ‘구래실/구래골/구래동’으로 부르는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아득한 옛날 천지개벽이 있은 뒤 장롱만한 거북이가 진흙벌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와 익구 마을에서 잠깐 쉬었다가 쇠죽골 산골짜기를 거쳐 올라와서 구월마을 앞 냇가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이 전설에 따라 「거북이가 올라온 골짜기」란 뜻에서 사람들이 ‘구래실/구래골/구래동’등으로 불렸다.

다른 이야기는 마을에 처음 살기 시작한 류씨 성을 가진 사람이 꿈을 꾸니 거북이가 마을 입구까지 기어올라 왔는데 마을 앞 들판에서 사라졌다. 뒷날 거북이 머물렀던 자리에 가보니 거대한 거북 모양의 언덕이 생겼다. 그 거북자리가 명당이라는 소문이 나 서로 묘를 쓰려고 했다. 결국 거북 머리에 노씨가 묘를 썼고 거북등에는 이씨가 묘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고속도로 공사로 인하여 그 주변이 모두 파헤쳐졌다. 이러한 형편이니 그곳이 명당자리인지 모를 일이다. 마을을 둘러싼 봉우리들은 제각각 특별한 이름과 사연이 있다.

사진 =구월마을 입구 당산나무
사진 =구월마을 입구 당산나무

○당산나무

구월마을에서는 참나무를 당산나무로 모신다. 뒷산에는 할배 당산나무가 있고 마을 입구에는 할매 당산나무 두 그루 있다. 정월 대보름 전날 마을에서 가려 뽑은 제관 2명이 목욕재계하고 당산제를 지낸다. 두 제관 중 한 명은 음식을 차리고 다른 한 명은 제사를 지낸다. 제사 지내는 과정은 엄격했고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필봉(筆峰)

구월 마을 앞에 있는 산이다. 생긴 모양이 붓 모양으로 뽀족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보통 필봉이 있으면 그 마을에 학자가 많이 나온다는 전설이 있다.

○시루봉

마을 뒤 높은 산이 ‘시루봉’이다. 시루봉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옛날 큰 홍수가 나서 마을과 산이 모두 물에 잠겼는데 산꼭대기 떡시루를 놓을 자리 정도만 물에 잠기지 않고 남았다.” 그래서 ‘시루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시무꼬

마을에서 오른편 골짜기 즉 동남쪽은 미타산의 큰 줄기인 다락산이다. 이 산의 산허리쯤에 잘록한 산고개가 ‘시무꼬(시모꼬)’다. 이 고개는 신반 대밭골로 통한다. 학생들의 통학 길이자 어른들의 신반 장 보러 다니는 길이다. 그래서 ‘장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산에 큰 바위인 ‘암덤’이 있는데 이 덤에는 호랑이 굴이 있다고 한다.

○ 배꼬(배고개)

봉수 천락으로 이어지는 고개가 바로 ‘배꼬(배고개)’이다. 이 고개의 이름에도 전설이 있다. “아득한 옛날 온 천지가 물에 잠겼을 때 한 도사가 배를 매어두고 착한 일을 한 사람만 배에 태워 살려주었다.” 도사가 배를 매어두고 사람들을 심판했던 곳이 바로 배고개이다.

○구래들

마을 앞에 층층으로 포개진 다락논이 바로 ‘구래들’이다. 논이래야 한 뼘 남짓한 손바닥만 논이 늘어서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 마을에서는 ‘들’이라고 부른다. 마을이 외지고 외부인의 출입이 없는 마을이었으나, 6.25한국전쟁 때는 부림면 인근의 피난민이 몰리면서 마을의 규모가 커지기도 했다. 아랫마을인 익구는 낙동강이 범람하면 물이 들어 농사짓기 어려웠지만 구월은 물이 들지 않아 먹을 것이 비교적 풍부했다고 한다.

○수파선생안공지묘(守坡先生安公之墓)

마을 뒤 산허리에는 수파선생안공지묘(守坡先生安公之墓)와 배숙인화산권씨(配淑人花山權氏) 내외분의 묘소가 있었다. 수파 안효제선생은 구한말의 우국충신이자 유학자였다. 백산 안희제선생의 일가의 친척이다. 지금은 묘소는 이장했고 비석과 상석 모두 옮겼다.

특이하게 구월마을 주변 지명에는 홍수와 관련된 전설이 많다. 익구리와 신반리 일대가 낙동강과 신반천의 범람으로 홍수피해를 많이 받은 것과 관련이 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특히 이웃 동네인 익구 마을이 물에 잠기는 일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전설의 내용은 모두 비슷하다. 천지 사방이 물에 잠겼으나 그래도 구월마을 주변은 피할 구멍이 있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구월마을이 산골 깊숙한 곳에 있어 모든 것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홍수 피해가 없는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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