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림면 땅 이름 유래와 역사이야기7 (익구리(益口里) 익구(益口)마을)
부림면 땅 이름 유래와 역사이야기7 (익구리(益口里) 익구(益口)마을)
  • 김진수 편집위원
  • 승인 2023.06.14 18: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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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의 땅 이름 유래와 역사이야기’는 허백영 문화원장님이 쓴 ≪우리고장 땅 이름≫과 박용식 교수가 쓴 ≪宜寧의 地名≫, 1930년대 발간된 ≪의춘지≫, ≪의령군지≫를 참고했다.

의령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김진수
의령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김진수

 

▣부림면 익구리(益口里) 익구(益口)마을

‘익구리(益口里)’는 부림면의 법정(法定) 동리(洞里)이며 ‘익구(益口), 구월(九月)’,월전(月田) 등의 행정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토박이들은 ‘이구(耳口)’, 이구(利龜), 입구(入龜), 익구(益龜) 등의 지명을 쓰기도 했다. ‘익구(益口)’의 명확한 유래는 알려진 바 없지만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옛날 창녕 방면에서 부산면(富山面)으로 들어오는 어귀가 되므로 ‘입구’에서 ‘익구’ 또는 ‘이구’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다른 이야기는 옛날에 거북이가 마을에 들어 왔기 때문에 ‘입구(入龜)’라 불렀다는 것이다. 익구리에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거북이와 관련된 신비한 전설이 있다.

전설의 거북바위
사진 = 전설의 거북바위

“아득한 옛날 천지개벽 때 온천지가 물에 잠겼다가 빠지면서 뻘흙(진흙탕) 속에서 큰 거북이가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그 거북이는 마을 앞 정자나무 밑에 와서 마을 쪽을 향한 채 머리를 길게 빼고 이상한 소리를 낸 후 목을 숨기고 엎드린 채 조용히 잠을 자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술과 음식을 차려가 먹이려 했으나 거북은 이미 돌로 변해 있었다. 그 이후 마을에는 늘 좋은 일만 있고 자손이 번성했다. 모든 행운을 거북이 덕으로 생각하고 거북이 바위를 정자나무 숲에 있는 조산 옆에 잘 모셔두었다. 이 때 거북바위는 머리가 항상 동네 쪽을 향하게 놓아두어야 한다. 만약 거북 머리의 위치를 바꾸면 반드시 마을에 화가 미친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왔다.”

옛 자료에는 ‘이구동(耳口洞)’이란 명칭이 나온다. 이것으로 ‘이구(耳口)’가 전통적으로 써 왔던 지명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을 재실 기문에 익구(益口)라는 지명이 나오는 것을 보아 익구(益口)역시 지역에서 사용해 왔던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이 마을 이름이 여러 가지 이유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고 추정한다.

사진= 익구마을 연자방아
사진= 익구마을 연자방아

 

○거북바위

마을 입구 당산나무 아래에 자연석으로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다. 사진의 맨 앞쪽에 있는 바위다. 현재 거북머리는 동네 방향으로 잘 놓여 있다. 그 옆에 마을에서 사용하던 연자방아의 아랫돌 위돌 한 쌍이 있다. 옛날 마을에 방앗간이 없던 시절 공동으로 사용하던 것이나 이제는 사용할 필요가 없어 버려져 땅에 반쯤 묻혀 있다. 냇가 적당한 곳에 복원하면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익구마을 안산이 왕령산(왕제산)이다. 뒤편 골짜기가 ‘암지골’이고 재를 넘으면 ‘유학사’와 ‘월전’마을로 갈 수 있다.

 

○호랑이덤

‘암지골’ 오른편에 큰 바위덤이 있는데 그 모양이 호랑이 혹은 사자 머리 모양 같다. 그 옆으로 이어진 산이 호랑이 몸통, 꼬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마치 마을 뒤쪽을 호랑이가 호위하고 있는 듯하다.

마을 앞·뒤 밭 언덕과 산비탈에는 닥나무가 많이 자랐다고 한다. 이 야생 닥나무가 바로 한지의 원료다.

○삼굿/딱무지

자생하는 닥나무는 베어 껍질을 벗겨 판매한다. 닥나무 껍질을 벗기기 위하여 찌는 구덩이를 지역에 따라 ‘삼굿’ 혹은 ‘딱무지’라 한다. 삼굿은 삼베의 원료인 삼을 찌던 구덩이인데 여기에 닥나무를 찌기도 했다. 삼과 닥나무는 껍질을 벗기기 위하여 찌는 방법이 비슷하여 삼 찌는 곳에 닥나무를 찌기도 한다.

삼이나 닥나무를 찌는 방법은 구덩이를 파고 돌을 깔아 편편하게 한다. 닥나무를 그 위에 쌓고 가마니로 덮는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돌이 달구어 지면 가마니 위에 물을 부어 증기가 올라오게 하여 찌는 것이다. 마을에 따라 커다란 드럼통에 넣어 찌기도 한다. 닥나무에서 바로 벗긴 껍질을 ‘피딱’이라하고 다시 겉껍질을 벗겨내고 속껍질만 남긴 흰색의 껍질을 ‘백피’혹은 ‘백딱’이라 한다. 이 백피는 시장에서 고가로 팔렸다.

 

○1년에 닥나무로 천냥, 나무장사로 천냥

익구 마을은 산골짜기에 있지만 비가 조금만 와도 물이 역류하여 침수피해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농업생산 보다 닥나무 껍질을 팔거나 땔나무를 팔아서 돈을 벌었다. 많이 하는 사람은 ‘백피’ 200근, 300근을 생산하기도 했다. 그래서 ‘1년에 닥나무로 천냥, 나무장사로 천냥’을 번다는 속담이 있다.

 

○마을 재실

의령 인문지리지인 ≪宜春誌≫<부림면>편에 보면 “익구리(益口里)는 여러 성씨들이 산다. 그 협동(夾洞)인 월전(月田)에는 초계정씨, 평산신씨 두 성씨가 산다. 누산재(樓山齋) 유허가 있다(益口里 散姓 所居 夾洞 月田 鄭草溪 申平山 兩氏 所居 有樓山齋墟)” 그러나 누산재(樓山齋)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형편이다. 벽진이씨 문중재실인 이지재(履之齋)는 최근에 낙서로 옮겼고 재실이 있던 자리에는 가정집이 들어섰다. 진양정씨 문중재실인 익산재(益山齋) 역시 흔적도 없다.

 

사진= 구익재 모습
사진= 구익재 모습

○구익재(求益齋)

1946년에 건립한 개성 왕씨 재실이다. 개성 왕씨 동양군 29대손 관희가 익구리에 정착하고 말년에 휴식처로 지은 것이 바로 구익재(求益齋)다. 구익재 기문에 보면 익구마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미타산 동쪽이요, 낙동강 서쪽에 재를 가로되 왕령이요. 골짜기를 가로되 익구(益口)라 한 것은 땅 됨이 비록 후미져 깊숙하지만 큰길 곁에 있어서 평야를 임하고 긴 시내가 둘리어서 맑고 텅 빈 경관이 족히 올라 바라보면 마을과 눈을 편하게 하는 바탕이다.” 이 기문은 안동 권씨 용현(權龍鉉)이 쓴 것이다.

 

○왕령산(王嶺山)

부림면 익구리에 위치한 산이다(고도 : 273m). 감암리 옥동 마을의 주산이자 진산이며, 북서쪽의 갓골산·다락산에서 미타산으로 연결된다. 『조선지지자료』(의령)에는 왕령산(旺嶺山), 『조선지형도』에는 왕령산(王嶺山)으로 서로 다른 한자로 기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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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림 2023-06-15 23:03:22
마을마다 옛 이야기가 숨어있어서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