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굴산단상] 공천유감 … 풀뿌리에는 색깔이 없다
[자굴산단상] 공천유감 … 풀뿌리에는 색깔이 없다
  • 박익성 기자
  • 승인 2022.04.2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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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만에 재현된 공천파동

‘혹시나’했더니 ‘역시나’였다. 인구 2만6천의 조그만 고을 의령에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군수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해 군수보궐선거에서 벌어졌던 ‘공천파동’의 재판이다. 연이은 파문의 중심에 선 인물은 역시 오태완 현 의령군수다.

지난해 국민의힘 공천파동의 수해자로 공천을 받아 군수에 당선된 오 군수가 이번에도 수혜자가 될 전망이다. 국민의힘 경남도당은 27일 오 군수를 포함한 3명의 후보를 의령군수 경선대상자로 발표했다. 경남 18개 기초단체장 가운데 15번째 경선발표였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공천결정이 난 것도 아닌데. 그렇다. 겉으로만 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이번 발표는 조해진 국회의원의 지역구인 밀양, 창녕, 함안 지역 단체장 경선발표가 난 지 5일만이자, 경선신청자 3인에 대한 면접이 있은 지 열흘만이다.

 

무혐의 군수는 컷오프, 재판중인 군수는 경선참여

다른 지역 경선발표가 후보면접 후 며칠 만에 결론이 난 것에 비해 발표가 너무 늦어진것이다. 공심위 회의 과정에 대한 온갖 추측과 소문이 난무한 것은 당연한 일. 공심위에서 컷오프(경선배제)를 결정하려했지만 내·외부에서 복수의 국회의원이 이 결정을 방해하고 있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특히 후보 개인의 면면과 정책을 보고 후보를 가려내야 할 공심위가 ‘여기자 성추행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오 군수를 경선에 참여시키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해진 국회의원의 다른 지역구인 창녕의 경우와 비교해 봐도 그렇다. 창녕의 현직 군수도 재선을 위해 공천을 신청했다. 창녕군수와 오 군수의 공통점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경쟁자와 현격한 지지도 차이를 보여 경선참여만 해도 공천이 확실시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 지역이 국민의힘 절대 우세지역인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당선은 따 논 당상’이다.

이에 반해 두 사람의 뚜렷한 차이점은뚜렷하다.  최근 ‘업무상 배임’으로 고발됐던 창녕군수는 최근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의령군수는 지난 1월 ‘성추행 사건’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녕군수는 컷오프 되었고 의령군수는 경선참여 결정을 받았다.

이러한 상반된 결과와 공천과정을 보면 삼척동자라도 고개를 갸웃거릴 만하다. 경선심사결과의 공정성과 형평성에 의심이 드는 이유다.

 

굴곡진 지방자치제의 그늘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는 1949년 지방자치법 제정되고 1952년 대통령이 임명하는 광역단체장을 제외한 시‧읍·면장과 시‧읍·면 의회, 광역단체 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된 것이 시초이다.

1960년 4·19혁명 후인 그 해 12월 광역단체장까지 선거로 뽑았지만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지방의회가 강제 해산되면서 중단됐다. 이로부터 30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것은 1991년이지만 광역 및 기초단체장을 제외한 시‧읍·면 의회, 광역단체 의회 의원선거만 실시되었고 1995년에서야 지금과 같은 완전한 지방자치제가 이루어졌다.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이 시작된 것은 1991년 광역의원 선거부터였으며, 1995년에는 광역의원과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까지 확대되었고 2006년 이후 기초의원에까지 공천이 실시돼 모든 선거에서 정당공천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정당공천 잔혹사

정치권이 정당공천제를 실시하면서 내 세운 명분은 이랬다. 정당이라는 정치단체가 후보자의 기본적 자질에 대해 사전검증을 함으로써 불량후보의 난립을 막고, 당선된 이후에는 정책 수행과정에서 정당이 뒷받침할 수 있으며, 할당제를 통해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방선거 정당공천은 정치권이 내세운 명분과 장점보다는 폐해가 더 심각했다. 공천과정은 지금도 그렇지만 전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아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웠다. ‘밀실공천’, ‘낙하산 공천’, ‘묻지마 공천’, ‘깜깜이 공천’, ‘돈 공천’ 등 앞에 붙는 수식어만으로도 그 실상이 짐작된다. 성범죄자, 탈세범, 사기꾼 등 온갖 파렴치한 경력을 자랑하는 후보가 주민의 선량이 되기도 했고,  야당의 지방자치단체장은 정책수행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며, 지역정치가 중앙정치에 심각하게 예속되는 결과를 낳았다.

공천경쟁으로 인한 잡음은 물론이고 이로 인한 지역민의 반목과 분열은 선거가 끝나고도 지속되어 결국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절친 사이의 싸움이 그렇고, 가족 간의 다툼은 한 번 시작되면 타인과의 다툼보다 더 치열하고 평생의 한이 되는 것처럼 정당공천의 후유증은 좁은 지역일수록 농촌지역일수록 더 깊고 오래간다. 도시지역과 달리 혈연과 지연으로 얽혀있고 눈만 뜨면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환경 탓이다.

 

선거철마다 부르짖는 공천폐지 공약

정치권인들 이를 모를 리 없다. 정치권은 매번 지방선거 때마다 여야를 막론하고 ‘공정한 공천’ 대책을 내놓는다. 그것도 모자라 대통령선거가 있을 때는 아예 ‘공천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말뿐이다. 제17대 국회 당시 여당이자 다수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 폐지’가 당론이었다. 하지만 2005년 6월 30일. 열린우리당은 야당인 한나라당과 야합해 기초단체장은 물론이고 정당공천의 대상을 기초의원까지 확대해 버렸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권한강화를 위한 꼼수였다.

이후 학계와 시민단체 등의 꾸준한 노력으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문재인 후보 모두 공약으로 정당공천제 폐지를 내걸었지만 역시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한 번 차지한 자신들의 밥그릇을 포기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마름과 머슴처럼 부릴 수 있는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집착을 도저히 놓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지역 국회의원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기초자치단체가 제 역할을 할 리가 만무하다. 지역 또는 생활밀착형으로 가야 할 지방정치가 정당 또는 중앙정치 종속형으로 왜곡된 당연한 결과다. 시장과 군수, 기초의원들과 후보들이 주민과 지역보다는 생사여탈권을 틀어쥔 정치인의 눈치부터 살펴야하기 때문이다.


허울뿐인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

지방선거에서의 정당공천은 득보다 실이 엄청나게 더 많은, 없어져야 할 패악이자 적폐다. 특히나 의령과 같은 전형적인 농촌지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의령은 웬만한 도시의 대단지 아파트 주민수보다 못한 인구에 지역경제를 지탱할 제대로 된 먹거리 하나 없는 가난한 지역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량들과 선량이 되고 싶은 후보들은 정당과 국회의원들에게 줄을 대고 줄을 서고 줄을 놓치지 않으려 늘 노심초사한다. 이들에게 지역특성을 살려 일자리를 창출하고 군민소득을 높이고 지역소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선량의 책무는 뒷전이다.

우리와 사회구조가 비슷한 일본의 경우, 오랜 지방자치의 경험으로 90년대 이후 기초자치단체는 거의 100%가 무소속이다. ‘지역정치의 중앙정치 종속’이라는 폐해를 깨달은 일본인들이 현명하게 선택한 결과다.

 

‘공천이 곧 당선’ 일당독재의 그늘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말이 있다. 경상도에선 국민의힘 공천이, 전라도에선 민주당의 공천이 당선의 지름길이다. 그런데 이는 ‘지역 일당독재’과 일맥상통한다. 일당독재라니.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그렇다 이제는 우리 유전자속까지 각인되었음직한 소름끼치는 말. ‘공산당 일당독재’를 떠올리는 말이다.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해 전세계를 분노시키고 있는 러시아, 코로나 확산방지를 위해 강제적 지역봉쇄를 감행한 중국, 그리고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북한. 그들의 공통점이 바로 (공산당)일당독재다. 경쟁자와 비판자가 없으니 오만해지고 오만하니 결국 부패하고 발전이 없다. 부패한 권력은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필망이 순리다.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일당독재가 판치는 기초단체도 마찬가지다.

중앙정치권은 틈만 나면 특정정당의 지역편중문제와 영호남갈등을 거론하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지역발전과 국가발전이 이뤄진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참으로 ‘눈 가리고 아웅이다’ 그 문제를 애당초 누가 만들었는가?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기초지방자치단체에 덧씌운 정당공천이라는 굴레가 문제의 발단이 아니었던가?

 

내 눈에 든 들보부터 들어내야

원인을 외면하고 결과만을 고치겠다는 그들의 주장이 참으로 가증스럽기 그지없다. 기초의원과 기초단체장에게 정당공천이라는 올가미를 씌우고 자신들의 수하로 만들어 지역을 정치색깔로 분열시키고 있으면서 기득권 지키기에만 골몰하는 그들의 표리부동에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최근 이른바 ‘검수완박’을 둘러싼 정치권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수사권을 지키려는 검찰도 여기에 합세했다. 이 상황을 지켜보는 의식있는 국민들에게 이들이 일으키는 소동은 그야말로 ‘천국에 사는 당신들의 밥그릇 싸움’이다. 정치권력과 검찰권력. 대한민국 엘리트집단이 그들이 가진 기득권 다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의 눈의 티끌은 보여도 내 눈의 들보는 안 보인다’는 성경구절이 있다. 정치권은 그대 눈에 들어있는 썩은 들보부터 걷어내라고 호통치고 싶다.

흔히 지방자치제를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한다. 그런데 이 풀뿌리에는 색깔이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그래야 풀이 건강하게 자란다. 빨갛게 파랗게 인위적으로 정당이라는 색깔의 독소로 풀뿌리를 물들이지 말라.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풀이 죽고, 지역과 지역민이 죽고, 정당과 국회의원만 살찔 것이다. 또 그렇게 비만해진 중앙정치인들 그 권세를 얼마나 유지할까. 이제 그만 제발 삼류정치에서 벗어나자. 다리 놓고 농로를 넓히는데 중앙정당의 정치적 논리가 도대체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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