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남존여비’ 의식 … 의령은 조선시대?
여전한 ‘남존여비’ 의식 … 의령은 조선시대?
  • 박익성 기자
  • 승인 2023.07.24 1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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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의령2. 의령에서 여자로 살아가기

‘집안 망신’, ‘꽃뱀’ … 피해자 두 번 죽이는 비난에

제2, 제3의 피해자 생기는 악순환의 고리 끊어야

 

“집안망신이다”, “얼마나 꼬리를 쳤으면”, “꽃뱀 아냐?”, “평소 행실이 어쨌길래”. 모두 성범죄를 당한 여성에게 쏟아지는 비난이다. 피해를 입고도 주변의 이런 손가락질과 수근거림까지 2차 피해를 당하게 되면, 피해자는 ‘그냥 참고 말 걸’ 자책하고 후회하게 된다. 가해자가 받아야할 비난을 거꾸로 뒤집어 쓴 억울함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의령군 간부공무원의 성추행 취재과정에서 만난 피해자들도 그랬다. 십수년 전 피해자는 인사불이익과 같은 부당한 처사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2차 피해로 다친 상처가 너무 커서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냥 가슴에 묻고 갈 것”이라며 “다른 누군가 같은 일을 당한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조언할 것”이라고 했다.

본지가 이번 사건을 보도하기 전 고민에 고민을 거듭 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보도 이후 피해자가 주변으로부터 입게 될 지도 모를 또 다른 상처가 우려되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지가 사건을 보도한 것은 더 이상 잘못된 관행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들이 묻히고 제2, 제3의 피해자가 반복적으로 생겨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다. 나아가 의령 특유의 폐쇄성과 아직도 진하게 남아있는 ‘남존여비’라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함이다.

성범죄, 그 가운데 공직사회 내의 성범죄는 공무원사회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범죄다. 이런 사회악을 묻어두고 어찌 지역발전을 운운할 수 있을까. 10년전부터 성범죄는 친고죄도 반의사불벌죄도 아닌 범죄가 되었다. 피해자가 고소를 하지 않더라도 처벌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성범죄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문제라는 사회적 인식이 깔려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손꼽힐 정도로 성범죄율이 높은 나라라고 알려져 있다. 유교적 세계관이 아직도 우리 의식 깊이 잔존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의령은 어떨까. 2만이 겨우 넘는 인구에 혈연, 지연, 학연으로 거미줄처럼 엮여 있는 지역의 실정을 고려하면 다른 지역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2년전 일어난 오태완 의령군수의 여기자 강제추행사건은 의령사회의 인식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군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문까지 언론에 발표하며 ‘자신은 결백하고 이 사건은 피해자와 반대세력의 음모’라고 몰아붙였다.

군수의 여론몰이와 지역특성이 합쳐지며 피해자는 주위에서 ‘꽃뱀’, ‘부덕한 여자’, ‘정치몰이배’로 몰리며 실로 감당하기 힘든 고통에 시달렸다.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공무원들과 기자들 대부분도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며 피해자에 대한 마녀사냥에 동참했다.

의령지역사회에서는 누구하나 피해자를 옹호하지 않았다. 20여개가 넘는 지역여성단체들은 침묵했고, 경남도와 타 지역 여성단체들이 대신해서 목소리를 냈다. 1심 선고 결과, 징역6월(집유 2년) 유죄가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도 단위 여성단체와 인근 지역 단체들이 현수막을 펴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성범죄 군수 사퇴’를 외칠 때 의령에선 현수막 한 장 걸리지 않았다. 부끄러운 의령의 한 단면이다.

2022년 여성폭력통계(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평생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은 38.6%로 2.6명 가운데 1명이다. 2021년 한 해 동안 형사 입건된 성폭력 범죄사건은 3만9천5건. 여기에 신고되거나 발각되지 않은 암수범죄까지 포함하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범죄는 특별한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내 가족, 내 이웃, 내 직장동료도 언제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내 아내, 내 딸, 내 며느리, 내 동생, 내 조카, 내 손녀가 성범죄를 당했을 때도 피해자 탓만 할 것인가. 또다른 피해자가 생기든 말든 2차 피해가 걱정되니 덮어두고 말 것인가. 그리하여 성범죄자가 판치는 곳에 내 후손들을 살게 할 것인가. 그리하여 ‘여자로 태어난 것이 죄’였던 조선시대를 들먹이며 ‘의령에서 태어난 운명을 탓하라’며 내 딸, 내 손녀의 순응을 강요할 것인가. 우리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내 집 앞마당은 내 손으로 정돈해야 하지 않겠는가.

성범죄에 대한 사실규명은 확실해야 하며 책임은 엄정해야 한다. 그래야 재발을 막을 수 있고 제 3의 피해자를 막을 수 있다. 기사보도로 혹여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지 모를 피해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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