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명경대 진실규명
[독자기고] 명경대 진실규명
  • 의령 인터넷 뉴스
  • 승인 2022.03.0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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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경환 경남향토사이사 ,의령지회장
사진=신경환 경남향토사이사 ,의령지회장

명경대는 자굴산 해발 897m 정상봉에서(칠곡면 내조리 산 1-1번지)동쪽으로 직선 200m정도 하산하면 가례면 갑을리 산 137번지 과거 백운암 자리였던 근래에 금정사가 있었던 자리 옆에 【너럭바위】평평하지는 않지만 울퉁불퉁한 바위로 형성된 큰 자연바위인데 규모는 길이15m 폭5m 높이25m정도 아주 큰 규모이다.

둠베기 먼당 자리가 바로 명경대이다 단정짓고 싶다. 20여년전 의령향교 이종경 전 전교님과 함께 이곳자리에 바로 필자와 함께 탐방하고 이종교 전교님도 현재 위치가 명경대라고 확신의 증언을 하였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장소가 확정되지 않아 이석대, 김진수 두 사람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의령향토문화연구위원이 필자가 이야기한대로 두사람이 기고를 했으나 현재까지도 반응이 없고 하니 지금이라도 산림휴양과에서는 군민토론회를 하루빨리 개최하여 결정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갑을 전망대라고 표기를 한 것을 명경대 전망대라고 고쳐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사료됩니다. 동쪽 해뜨는 부자재 골짜기는 바로 명경대 마주보고 있으니 동강 문집에 나오는 싯기와 일치한다.

사진=85년 구군지 45P 캡쳐
사진=85년 구 군지 45P 캡쳐 본

◎ 명경대

자굴산 북쪽에 봉림마을과 양성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다. 남명 조선생 식이 이 대를 사랑하여 오고 가면서 들린지 여러번이다. 선생은 이 대에서 문을 닫고 홀고 앉아 글을 보며 밤을 새우고 고요하게 날이 저물 때 절에 중들이 말하기를 선생이 거처하는 방안에서 종일토록 아무소리가 없고, 간혹 책상위에 손을 얹는 소리 뿐임으로 글을 읽고 있는줄을 알았다고 하였다(김동강 문집에 있는말)남명시에 말하기를 깍아세운 봉우리 구름낀 산이 북쪽에 우뚝 섰고 소매가 하늘에 나를 때 봉황새가 남쪽으로 난다 말없이 내가 얼마뒤에 떠나고져 함에 동해들과 둑에서 돌아갈 것을 알으킨다.(또한수)높은 집을 누가 공중에 뜨게 했는가 가제처럼 웅크리고 올해는 구릉에서 세월을 보내 푸른하늘 나직해지지 못하게 하고 해돋는 골짜기에 비로소 깨달았다. 세상 풍속이 문에들지 못하게 구름이 막아주고 바위는 도깨비 두려워서 수목으로 둘러있고 옥황상제에게 빌어서 신선이 되고져 하나 인간들이 이 높은 은혜를 시기함을 어이하랴.

 ◎남명연구소에 바라는 견해

금정사 입구에 남명학연구소에서 20여년전에 세운 남명선생에 대한 내용은 정 위치에 세우든지 그렇지 않으면 남명학연구소에서 회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자굴산 자연휴양림에 대한 견해

자굴산 자연휴양림을 조성하면서 조선시대 조경에는 대나무 식재가 포함되지만 자굴산 대나무 식재는 적합하지 못하다. 이유는 군청 앞 구룡산에는 대나무 숲으로 산세가 아주 나쁘게되었는데 이곳 휴양림이 백년후에는 자굴산 전체가 대나무 숲으로 조성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대나무를 없애는 방안 등을 검토해봄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집니다.

사진=의춘지에 실린 명경대, 동강 김우홍(곽재우의 손위동서) 문집
사진=의춘지에 실린 명경대, 동강 김우홍(곽재우의 손위동서) 문집 중에서 발췌
사진=갑을 전망대(부자재)와 명경대 사이가 직선거리 1500m.
사진=갑을 전망대(부자재)와 명경대 사이가 직선거리 1500m.
사진= 경상대학부속 남명학연수소에서 세운 남명선댕의 시비
사진= 경상대학부속 남명학연수소에서 세운 남명선댕의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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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명경대 전망대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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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명경대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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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좌, 신경환 전)향토문화사 소장. 우,이석대 향도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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