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루 이극로 선생 생가 이대로 좋은가?
고루 이극로 선생 생가 이대로 좋은가?
  • 우성민 기자
  • 승인 2019.04.12 12: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루 선생 생가 위채

 

  지난 3일 고루 이극로 선생의 생가 (의령군 지정면 고루로3번길 8)를 보존하고, 활용할 방안을 찾기 위해 성수현 의령문화원장, 이광우 의령군발전협의회 회장, 허영일 의령향토문화연구위원, 김진수 의령향토문화연구소 간사가 방문했다.

  그분의 생가를 보존하고 숭고한 한글독립운동정신과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것은 의령인 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였다.

  자랑스러운 의령의 인물, 제2의 세종대왕이라고 말하는 고루 이극로 선생은 전 국민의 추앙 받을만한 업적이 충분한 분이다. 한글을 우리 민족이 불편함 없이 쓸 수 있게 해준 분, 그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어연구회̕ (조선어학회)에서 한글맞춤법을 제정하고, 표준말을 사정하고, 외래어 표기법을 만들고, 국어사전을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힘든 고난의 시간,  혼란스러운 시기를 견디며, 깊이 있는 지식과 탁월한 추진력 을 발휘하여 이 모든 일들을 해낸 분이다. 이러한 선생의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극한 이념 대결구도에 밀려 그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는 1948년 4월 김구선생 등과 같이 남북지도자회의에 참석하러 북한에 간 이후 남한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말 사전 편찬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헌신한 인물이고, 조국 광복을 위해서 몸을 바친 인물이라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자신의 목숨보다 한글을 사랑했고, 우리말 편찬에 일생을 바쳤던 분, 그 분의 생가를 보존하고 그 숭고한 정신과 업적을 기리는 다양한 일들이 의령군민의 단합된 힘으로 내실 있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이극로 생가 답사를 마무리했다.

  현재 창원에 살고 있는 선생의 친족 중에 한분이신 이종신씨가 생가를 소유 관리하고 있다. 이 생가는 1962년 화폐개혁 당시, “남지 사는 분에게 팔리게 되었는데 이종신씨의 부친이 생가를 지켜야 한다고 판단하고 동네 분들과 의논하여 매입해 지금까지 보존해 오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그는 매주 “금요일이면 생가에 와서 청소도 하고 집 주변 정리”를 한다고 했다.

  이제는 이 한 분에게 맡겨야 할 일이 아니라 우리 군민이 나서서 함께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의령의 인물이자 대한민국의 인물인 고루 이극로 선생의 생가 보존과 활용이 빠른 시간 내에 꼭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생가 입구
생가 헛간

 

생가 뒤주
아래채 뒤편에 우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