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숭일 선비의 의령향약(7)
이숭일 선비의 의령향약(7)
  • 허영일 편집위원
  • 승인 2019.03.2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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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의령향약정규의 현대적 의의

  향약은 조선시대 재지사족(在地士族)이 주도한 민간 자치기구로서 지역의 갈등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었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완전한 비정부기구는 아니지만 행정조직은 더더욱 아니다. 다산의 향약 비판에서 알 수 있듯이 향약이 순기능만 한 것은 아니며 양반이 상민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향약의 이념은 선비들이 자치를 통해 지역사회를 사회. 도덕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향약의 정신이 바로 ‘박아이문(博我以文), 약아이례(約我以禮)’라는 인문적 전통에서 출발했다.

  사람이란 교육될 수 있고, 자율적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믿음이 박아이문, 약아이례의 정신이다. 인문적 능력과 교양 없이 ‘예’만 강조했더라면 유교의 향약은 그야말로 봉건지배층의 민간 통치수단으로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향약은 인문적 전통을 강조하는 ‘박아이문’ 위에서 성립되므로 조선의 많은 선비가 좋은 향약을 만들어 보고자 노력했다.

  17세기 후반 (1692~1694), 이 숭일 선비도 향약정규를 의령에서 실시한 적이 있다. 분명 조선시대 선비(在地士族)들이 구축하고자 했던 유교적 공동체는 양반중심의 공동체였다. 물론, 오늘날 더 이상 신분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는 남녀의 성차별, 직업에 대한 차별 등 여러 차별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차별이 진정 철폐되고 청산되고 특권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공동체는 든든한 울타리가 될 수 있다.

  향약이라는 전통문화는 분명 의령을 비롯한 마을공동체의 자랑스러운 문화자원이다. 제대로 된 지방자치는 전통문화(향약의 이념: 지도층이 솔선수범하여 좋은 공동체 만들기)를 새로운 문화전통으로 창조해 내는 우리들에게 달렸다. 지방소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고장의 오래된 미래인 향약을 깊이 연구하고 새 시대에 관한 전문지식을 축적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명실상부한 “좋은 공동체(里仁)”를 만드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숭일 현감의 향약정규의 덕업상권 중 “진실하고 돈후하며 남을 속이지 않겠다는 것을 다짐하며, 반드시 공손하고 근신하며 독실하고 공경함을 실천한다. 선한 행동을 보면 나도 반드시 실천한다. 과실을 말해주면 나부터 반드시 고친다.”는 선비정신은 오늘 이 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한 전통문화(無形遺産)이다.

  한국은 예부터 정신문화(선비정신)의 선진국이었다. 이는 주변 국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인정한 엄연한 현실이다. 군자국(君子國), 동방예의지국, 독서의 왕국, 교육대국으로 비쳤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그런 모습으로 외국인의 눈에 비치고 있을까? 군자. 예의. 독서. 교육으로 표현되는 한국의 브랜드는 분명히 자랑스러운 전통이다. 그러나 이는 하드웨어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정신문화이다.

  그것은 천지인(天地人)이 하나라는 생명공동체에서 출발하여, 모든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인간 공동체로 진화하고, 여기서 백성을 사랑하는 민본정치(民本政治)가 뿌리를 내리고, 민본정치를 위한 공익정신(公益精神)이 꽃피었다. 문화의 발생순서로 보면 무교(巫敎)에서 출발하여 불교문화와 유교문화가 접목되면서 진화되었지만, 그 내면에는 공통된 가치체계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한국인은 전통적인 큰 공동체 정신이 이기주의와 연결되어 작은 이익 공동체로 퇴화하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작은 공동체들이 서로 치열하게 이익을 다투면서, 이를 인권이니 평등이니 자유니 하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 서양인이 강조하는 자유, 평등, 인권 등은 봉건사회의 질곡에서 개인의 생존권을 찾는 수단으로 그 나름의 소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기주의로 흐르게 되면서 사회공동체가 해체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 박애주의로 이기주의를 억제하고, 복지정책으로 약자를 보호하는 견제장치를 마련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투기와 이기로 흐르면서 그러한 제동장치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상업주의와 대중주의와 패권주의가 자유, 인권, 평등을 악용하는 사례도 무수히 많다. 이것이 오늘날 서구사회를 비롯한 세계가 직면한 위기의 신호가 아닌가?

  가정이 무너지고, 노인이 고독하고, 마약이 범람하고, 가공할 폭력적 범좌가 난무하고, 자연환경이 파괴되면서, 고독한 자유, 고독한 평동, 고독한 인권의 사회로 치닫고 있다. 자유, 평등, 인권이 인간의 행복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행복하지 않는 자유, 평등, 인권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금의 세계화는 자본과 경제의 세계화이지 인류의 높은 가치의 세계화는 아닌 듯하다.

  여기서 한국의 전통문화(선비정신: 인본주의. 공동체주의. 생명주의)가 담긴 이숭일선비의 향약정규를 새롭게 눈여겨보는 것은 우리 마을의 문제(지방소멸 위기)를 해결하는 대안을 찾은 것만이 아니라, 인류 공통의 고민을 함께 풀어보자는 뜻도 담겨있다.

※ 이글을 공유 하여 주신 허영일 향토사연구위원님께 감사 드립니다.

 

(참고자료)

1) 남명사상의 시대정신 발전전략 (경상남도, 2018. 5.30/ 창원 컨벤션 센터)

2) 안동 장씨. 400년 명가를 만들다(김서령/ 푸른역사/ 2018)

3) 조선유교사회사론( 이태진/ 지식산업사/1989)

4) 한국선비지성사( 한영우/지식산업사/2017)

5) 한글과 선비정신의 세계화( 김진수/북랩/2018)

6) 시대정신과 지식인( 김호기/돌베개/ 2012)

7) 의령군지(의령군지 편찬위원회/일신인쇄사/1983)

8) 조선후기 향약연구(향촌사회사연구회/민음사/1990)

9) 민중과 대동( 이창일/ 모시는 사람들/ 2018)

10) 500년 공동체를 움직인 유교의 힘(한국구학진흥원/글항아리/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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