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군민과의 대화?
[기자수첩] 군민과의 대화?
  • 박익성 기자
  • 승인 2023.02.28 1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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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의령읍에서 열린 군민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군수가 군민과 직접 대화를 한다니 모처럼 기자로서가 아니라 군민 자격으로 격의 없이 얘기해 보고 싶었다. 기자는 오태완 군수와 직접 대화해 본 적이 없어서 더욱 그랬다. 재판기간 1년여 피고석에 앉은 오 군수의 옆 모습은 바로 앞에서 지겹도록 보아왔지만.

14분간 참석내빈들의 인사가 있었고 11분 동안 군정홍보 영상을 시청했다. 이어서 오 군수가 직접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느라 28분의 시간을 보냈다. 도합 한 시간이 지나고서야 군민들의 질문시간이 시작되었다.

기자는 사전에 질문을 하리라는 의사를 표명했었고 질문을 위해 마이크를 달라고 손을 들었다. 마이크를 담당한 여직원은 고개를 돌리고 못 본 척했다. 다른 직원이 가서 마이크를 주라고 얘기하는 데도 담당직원은 마이크를 꼭 쥔 채 기자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군민이 질의에 나선 것도 아니었다.

기자가 큰 소리를 냈다. “질문 할 테니 마이크를 주세요!” 그제서야 시뻘개진 얼굴의 직원이 마지못해 건네는 마이크를 잡은 기자. ‘아뿔사’ 뒤통수를 치는 깨달음. 동원된 군민. 짜여진 각본.

후회는 이미 늦었고 질문을 안 할 수는 없었다. 첫 번째 질문. 군청 간판과 최근 지어진 체육관 간판 색깔을 두고 ‘평양이냐, 홍등가나 술집간판 같다’는 군민들과 외지인들의 여론을 전했다.

오 군수의 답변. 컬러 마케팅. 의령의 상징 곽재우 장군이 붉은색 옷을 입었으니 의령의 상징색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다. 대한민국에 이런 시도를 하는 곳은 거의 없다. 30여년 홍보전문가로 살아 온 기자가 30여년 정치경력의 군수에게 참교육을 당했다.

기자의 의도는 이랬다. 컬러 마케팅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선무당 굿’하는 것처럼 어설퍼서 역효과가 나니 다시 한 번 고려하든지 아니면 군청건물 전체를 붉은 색으로 칠하든지 계획을 세워 제대로 추진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취지였는데. 기자가 어리석었다. 우문현답이었다.

두 번째 질문. 군정홍보영상을 보고 군수님의 셀프업적자랑까지 듣고 군민들의 마지막을 위해 화장장까지 건립하신다고 하니 군수님의 팬이 될 것 같다. 그런데 불미스런 일에 연루되어 안타깝다. 성범죄자로 몰리는 군수님이 억울한 것처럼 군민도 억울하다. 지난번처럼 기자회견이라도 해서 결백을 알려야 되지 않지 않겠느냐. 혈서라도 쓰든지. 왜 답답하게 가만히 계시느냐.

기자의 이 질문에는 연유가 있다. 얼마 전 유명을 달리 한 이웃고을 군수의 비극 때문이다. 그는 젊은 시절 기자와 함께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친구였다. 유달리 자존심이 강했던 그였지만 선거법 재판을 앞두고 그런 선택을 하리라고는 주변의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기자는 그 일로 가슴 한 구석에 바위덩어리 하나 넣은 것처럼 여태까지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기자에게 최근 오 군수의 미적지근한 태도는 숨까지 막히게 했다. 누구는 억울하다며 목숨까지 버리는데 고작 ‘군민에게 송구하다. 재판에서 제대로 소명되지 않은 것 같다’는 식으로 대응해 군민들의 불신만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는 능력있다고 자부하는 오 군수의 군정수행을 기대하기 힘들다.

기자 같으면 군수직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진실과 무고함을 밝히는 데 전념했을 것이다. 군민과의 대화. 군민들을 직접 만나 이 일에 대한 결백함을 알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1심이긴 하지만 재판에서 성범죄자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힌 군수가 아무리 이런 업적을 쌓았다.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한들 누가 믿어 주겠는가. 모든 일에는 신뢰가 우선인 법이다.

기자는 두 번째 질문을 통해 오 군수가 예전처럼 ‘나는 모함을 당했다. 나는 억울하다.’며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를 원했다. 사건 이후 재판 전까지 틈만 나면 언론을 통해 피해자와 반대정치 세력의 음모라고 주장하던 그 당당함을 되찾아 참담한 의령군민의 자존심을 되찾게 해 주길 바랬던 것이다.

오 군수의 대답. 간담회에서 얘기할 내용이 아니지만 질문을 받았으니 대답한다. 군민에게 송구하고 정말 죄송한 일이다. 자신의 인생전체가 걸린 일인데 진중하게 물어주면 좋았겠는데 예의가 없다. 재판 전 기자회견 등 공개적인 입장표명에 대해 2차, 3차 가해라는 법원의 판단이 있었다. 앞으로는 조용하게 항소에서 진실을 밝혀나가겠다는 정도로 답변했다.

황당했다.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2차, 3차 가해라니?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지면, 결백이 밝혀지면 2차, 3차 가해도 없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성추행 재판이 오 군수 인생전체가 걸린 일이라면 피해자의 인생은? 왜 입장과 태도와 말이 달라지는가?

기자에게 예의를 따지며 진중하게 질문하기를 요구하기 전에 사건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부터 진중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기자회견을 열고 수시로 입장문까지 발표하며 정치음모 운운하며 피해자를 몰아세우지 말고 조용히 수사와 재판을 지켜봐 달라고. 처음부터 그랬어야 하지 않았을까.

대화. 기자가 아는 대화는 터놓고 서로 하고 싶은 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이 짧았다. 학식이 모자란 탓이리라. 기자는 이날 초대받지 못한 군민과의 대화에 불청객이 되어 오 군수에게 2년 가까이 받았던 성교육도 모자라 컬러마케팅교육에 예절교육까지 받았다. ‘군민과의 대화’가 아니라 ‘군정홍보와 군민교육’으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싶다.

27일 의령읍 강당에서 열린 군민과의 대화 행사
27일 의령읍사무소 2층 강당에서 열린 군민과의 대화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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