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8개월 만에 드러난 대군민 ‘사기극’
1년8개월 만에 드러난 대군민 ‘사기극’
  • 박익성 기자
  • 승인 2023.02.13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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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군수, 징역 6월 집유 2년 이례적 중형

오태완 군수 성추행 사건 1심 판결

정치적 음모 운운하며 성추행사건 은폐 시도

재판부, 조직적 사건축소ㆍ무마 강한 ‘의심’

오 군수 비호 기자, 공무원들 수사 불가피할 듯

“1년8개월간 진실이 가리워졌고 진실을 말한 사람들이 오히려 고통을 받은 것에 최종책임을 져야한다.”

10일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열린 오태완 의령군수의 강제추행 사건 1심 선고 재판에서 강지웅 부장판사(형사1단독)가 오 군수에게 징역6월 집행유예 2년, 성폭력치료강의수강 40시간 형을 선고하면서 밝힌 양형이유의 맺음말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현직 군수가 공식적인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기자들과 군청공무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피해자를 강제추행한 사건으로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쓴 피해자에게 가졌던 불만과 적대감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범죄라고 판단했다.

 

범행동기와 방법 등 죄질 무거워

재판부는 오 군수의 범죄가 비록 유형력의 강도가 약하다 하더라도 범행동기와 방법 등 죄질이 무겁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2차 피해를 가한 점, 기자들과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축소·무마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강하게 의심이 가며 그 배후에 사건의 진실을 가리고자 이 사건을 정치적 음모로 몰고 가려 했던 오 군수의 의도가 깔려있었다는 점에서 무거운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2차 가해의 구체적인 내용을 열거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먼저 소문을 퍼뜨렸다고 볼 근거가 없고 처음부터 형사고소를 작정한 것이 아님에도 오 군수는 피해자의 고소장 접수 3일 후에 기자회견을 열어 이 사건을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자신을 음해하려는 배후세력의 음모로 규정했으며 피해자를 무고와 명예훼손죄로 형사고소했다. 또한 여러 경로를 통해 피해자와 유력한 목격자인 프레시안 신윤성 기자에 대한 회유를 시도하다가 신 기자가 보고 들은대로 진술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모욕죄 등으로 고소고발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행위들이 사건을 은폐하고 진실을 호도하기 위해 이뤄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정치세력의 음모, 허위고소 주장 ‘일축’

재판부는 이 사건 고소가 정치세력의 사주를 받은 피해자의 자작극이라는 오 군수측이 주장도 일축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이 사건은 일반적인 성범죄처럼 둘만 있는 밀폐된 공간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피해자와 오 군수 외 8명의 목격자가 있는 상태에서 벌어졌다. 고소내용도 주변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반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피해자가 오 군수를 허위로 고소한다면 다른 목격자들에 의해 허위성이 쉽게 드러날 수 있다. 더구나 피해자가 운영하는 인터넷 언론사가 매달 의령군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었고 피고인 당선 이후에는 별다른 부정적인 기사를 쓰지 않고 있었던 상황에서 피해자가 2차 피해나 무고죄로 처벌받을 위험성을 무릅쓰고 허위고소했다고는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또한 오 군수와 변호인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해자가 이런 위험성을 감수하고 고소할 만큼 다른 정치인이나 정치세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거나 다른 세력과 허위고소의 모의를 했다거나 이 고소로 피해자가 유무형의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재판부는 또한 사건 당시 간담회에 참석한 기자들과 오 군수를 수행한 공무원 3명에 대해 사건을 조직적으로 축소, 은폐하려 했다는 강한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며 이들의 사법농단 시도까지 언급했다. 재판부는 이들 기자 중에 일부가 사건 직후 오 군수의 범죄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하며 피해자를 위로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전 진술을 번복하고 오히려 피해자의 언행을 비난했다고 질타했다.

오 군수를 수행했던 공무원들도 실체적 진실에 반하는 진술을 하는 등 사건의 축소, 은폐정황이 사건 관계자들간의 통화기록과 녹취록, 수사기관과 법정진술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이러한 판단은 사건 이후 드러난 일부 기자에 대한 의령군의 대가성 광고비 지원정황, 피해자언론사에 대한 광고비 중단 보복, 재판에서의 위증에 대해 이후 검경의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검찰 공소사실 그대로 인정

재판부는 오 군수의 범죄에 대해 검찰의 공소사실을 그대로 인정했다. 오 군수가 참석자들이 방안에 모두 있는 상태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가려고 하자 ‘어디가냐’고 자꾸 묻는 피해자에게 다가가 피해자의 오른쪽 손목 부위를 잡아 끌며 ‘내 화장실 가는데 같이 갑시다. 내 밑에도 붉은지 보여줄게’라고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며, 이는 이보다 앞서 ‘저는 얼굴 뿐 아니라 밑에도 벌개집니다’라고 한 발언과 결합해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가 되므로 강제추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범죄사실 인정에 앞서 이 사건의 쟁점과 증인들의 진술에 대해 언급했다. 먼저 ‘밑에도 벌개진다’는 발언에 대해 검찰은 ‘밑’의 의미가 남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성적인 발언이라 주장했고 오 군수와 증인들은 ‘온몸’을 뜻한 다고 맞섰지만 재판부는 성적 발언임을 인정했다. 오 군수의 이 발언에 ‘발 말이지예. 발’이라며 의미를 희석시키고자 했던 서울일보 안성기 기자의 맞장구가 범행을 인정하는 유력한 증언이 되었다. 반면 이에 대한 반응으로 나온 오 군수측 증인들의 엇갈린 증언들은 오히려 문제가 됐다.

 

화장실 간 시각 확인 … 안성기 기자 진술 결정적

이 사건 재판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실관계였던 오 군수가 화장실로 간 시각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주었다.

검찰은 이 시각이 저녁 7시30분 이전이라 했고 오 군수측은 8시20분에서 30분 또는 그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의 유력한 목격자인 프레시안 신윤성 기자가 당시 건넌방에서 8시17분부터 16분간 통화했으므로 오 군수가 8시17분 이후에 화장실로 갔다면 신 기자는 범행장면을 목격하지 못한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7시20분에서 8시17분 사이라고 판단했다.

이 판단 역시 안성기 기자의 진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검찰은 안 기자가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오 군수가 화장실 간 틈을 이용해 8시께 1층으로 담배피러 나왔다고 진술했지만 CCTV에 포착된 시간은 7시 26분이었으므로 오 군수가 화장실 간 시각은 7시30분 이전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안 기자는 두 번의 진술 이후 검찰수사관과의 통화에서 오 군수가 화장실 간 시각과 흡연하러 간 시각의 선후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가 법정에서는 자신이 담배피고 온 지 10분이 지나 오 군수가 화장실로 갔다고 또 한번 진술을 번복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안 기자의 법정증언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오 군수가 화장실로 간 실제시각은 7시40분쯤이었고 안 기자가 오 군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고 참석자 전원이 피해자와 오 군수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동선을 무릅쓰고 긴요하지도 않은 흡연을 위해 혼자 밖으로 나간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믿기 어렵다고 배척하고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채택했다.

재판부는 신윤성 기자의 통화를 목격했다는 오 군수와 전국매일 최판균 기자, 정성기 비서 등 3명의 증언불일치도 문제 삼았다. 심지어 오 군수가 화장실에서 나와 건넌방에서 최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복도에서 대기했다는 강신일 계장이 이들 3명과 달리 신 기자를 보거나 통화음성을 듣지도 못했다고 함으로써 이들의 주장은 배척당할 수밖에 없었다.

 

오 군수의 방안동선 논란도 검찰 주장 인용

이 사건에서 또 하나의 논쟁거리인 피해자가 화장실로 가기 위해 방안에서 움직인 동선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검찰은 오 군수가 방안에 놓인 두 개의 테이블 사이로 이동했다고 주장한 반면, 오 군수측은 테이블 사이에는 빈 맥주병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어 통과할 수 없었으므로 참석자들의 등 뒤 벽쪽으로 돌아나갔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행사의 주재자는 최단거리 통로로 이동하는 것이 통상적이며 참석자의 등 뒤로 동선을 잡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했다. 재판부는 오 군수가 시골주재기자들과의 단순한 모임인 이 간담회는 정식의전이 작동하는 공식적인 행사가 아니므로 의전대로 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지만, 오 군수가 입장할 때는 테이블 사이로 해서 자리에 앉았음을 인정했고 강신일이 간담회 내내 오 군수의 행동을 주시하다 오 군수가 나갈 때 방문을 열어 주었을 정도로 의전에 신경을 쓰고 있었으므로 오 군수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배척했다.

여기다 재판부는 오 군수가 움직였다는 동선상 탁자모서리에 앉아 있던 정성기 비서의 행동에 대해 정 비서가 일어섰다고 하기도 하고 앉아서 등만 숙였다고 증인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점을 그 근거로 추가했다. 정 비서의 등과 벽 사이의 공간이 좁았음을 알 수 있고 군수가 일어서는데 수행비서가 일어서지도 않았다는 진술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테이블 간격 오 군수 지나다니기 충분

재판부는 동선과 관련된 테이블 사이 간격에 대해서도 경찰실황조사와 오 군수 측이 제시한 현장재연 동영상, 증인들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보면 대략 40cm 정도의 간격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는 한 사람이 지나다니기에 충분한 간격이라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여기에 테이블의 구조상 피해자와 신 기자의 증언처럼 맥주병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고, 오 군수가 화장실 간 시점이 간담회를 시작한지 한 시간 남짓 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이므로 빈병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아 빈병을 테이블에 붙여 세워 놓더라도 오 군수가 얼마든지 지나갈 공간이 확보된다는 점. 안 기자가 검찰조사에서 지나가려고 하면 지나갈 수 있었다고 진술한 점 등을 이유로 덧붙였다.

재판부는 증인 가운데 신윤성 기자가 가장 구체적이고 객관적이며 일관성 있는 진술을 한 것으로 평가했다. 피해자의 진술은 일관성과 구체성이 있으나 세부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역할을 축소하기는 했지만 사건의 대체적인 흐름과 중요쟁점에 대해서는 신 기자의 진술과 모순되는 점이 없다고 보았다.

반면, 오 군수의 범행을 부인한 증인들은 잦은 진술번복과 같은 사안에 대해 엇갈리는 진술, 실체적 진실과 양립될 수 없거나 자가당착에 빠지는 진술을 했다는 사유로 배척되었으며 사건의 실체에 부합하는 초기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이 주로 채택되었다.

 

공무원 3인 진술 객관적 사실과도 배치

재판부는 그러면서 오 군수를 비호한 증인들을 한사람씩 거론했다. 의령정론 김상오 기자는 피해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충격을 받았다. 군수가 그러면 안된다’고 사건의 실체를 인정하고 카톡메시지로 피해자를 위로했지만 이후 검찰조사에서부터 진술을 바꾸는가 하면 진술내용도 앞뒤가 안 맞아 초기진술만 신빙성을 인정하고 법정진술은 배척했다.

서울신문 안성기 기자는 진상파악에 도움이 되는 진술을 많이 했으나 오 군수의 언행에 대해서는 점점 뉘앙스를 바꾸어 신뢰성에 흠집을 주었다. 의령신문 유종철 기자는 사건의 주요내용에 대해 잘 모른다거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진술함으로써 신빙성 유무를 떠나 증언의 가치 자체가 떨어져 배척했다. 전국매일 최판균 기자는 수사기관부터 법정까지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기만 할 뿐 주요쟁점은 물론 기초적인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대다수 참석자의 진술과 배치되어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이미옥, 강신일, 정성기 공무원 3인은 객관적인 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진술을 함으로써 재판부로부터 신뢰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들이 한 진술의 신빙성을 가장 의심케 하는 부분은 오 군수가 화장실 간 시점에 관한 진술. 이들은 20시20분에서 30분 사이 피고가 화장실 갔다온 사이 피해자가 ‘한 잔 더 먹자’며 안주로 수육을 시켰다고 했지만 CCTV 화면과 종업원의 진술로 20시4분 식사가 제공된 이후 1층 주방에서 수육을 준비한 사실이 없었다. 특히 정 비서가 식대를 결재한 8시32분 이후에는 식당종업원이 모두 퇴근하는 상황이었다.

 

오 군수측 주장 ‘성범죄피해자다움’ 배척

재판부는 오 군수와 변호인, 오 군수의 범죄를 부인한 증인들이 피해자와 신윤성 기자의 증언을 탄핵하기 위해 제시한 이른바 ‘성범죄피해자다움’에 대해 50분이라는 전체 판결문 낭독시간 중에서도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피해자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내세운 9가지 구체적 사례를 일일이 나열하면서 피해자가 처한 구체적인 처지와 상황, 피해자의 정서 및 심리상태를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사정만으로 피해자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보인 피해자의 행동이 성범죄피해자답지 못하다고 보는 것은 피해자에 고정된 피해자다움이나 여성다움을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1심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오태완 군수는 법원을 나서면서 “상황이나 시간대가 잘 맞지 않는다. 소명이 부족했던 것 같다. 항소에서 부족한 부분을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사건발생 이후 피해자를 지원해 온 함안성가족상담소 김선희 소장은 “피해자가 전날 밤 9시 넘어서까지 불안한 마음을 호소했다. 진실이 밝혀져서 가슴이 주체 못할 만큼 뛰고 눈물이 나올 것 같다”고 벅차했다.

1심선고 후 언론인터뷰에 응하는 오태완 군수(왼쪽)와 김선희 함안의령성가족상담소장.
1심선고 후 언론인터뷰에 응하는 오태완 군수(왼쪽)와 김선희 함안의령성가족상담소장.

한편, 이 사건 재판부는 2022년 1월부터 지난 10일까지 어느 달은 두 번씩 공판을 여는 등 11차례의 재판을 숨 가쁘게 이어왔으며 재판장이 직접 현장을 다녀갔다는 설이 있을 만큼 재판에 열의를 쏟았다. 애초 이 사건 수사검사였던 검사는 기소까지 맡았다가 지난해 울산지검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마산지원까지 오가며 사건을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변호인측은 항상 재판장이 제시하는 재판일자 중 가장 늦은 공판일자를 선택하면서 1심 재판기간을 최대한 늘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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