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장과 군수 그리고 ‘박힌 돌’과 ‘굴러온 돌’
〔기자수첩〕 이장과 군수 그리고 ‘박힌 돌’과 ‘굴러온 돌’
  • 박익성 기자
  • 승인 2022.12.29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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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감히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려고 하는가?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지근지근 밟아 버려야 한다.”

최근 유곡면 한 마을 이장이 마을주민들을 무더기로 고소고발(12월2일자 본사 기사)한 사건이 전국방송을 탔다. 황당한 이 사건의 내막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사건의 장본인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는다’는 식으로 지역기자들의 횡포와 갑질이 극심했고 지금도 그렇다. 지방의원이나 지역유지들이 기득권 세력들이 아주 배타적이었다. 지역이 니편 내편으로 갈려있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강제추행 재판을 받고 있는 오태완 의령군수가 법정에서한 발언이다.

10대에 고향을 떠나 50여년 만에 마을로 돌아 온 이장은 자신이 ‘박힌 돌’, 타지에서 들어와 10~20년을 산 주민들을 ‘굴러온 돌’이라 했다. 역시 10대에 출향해 40여년 만에 고향에 돌아 온 군수는 거꾸로 자신이 ‘굴러온 돌’이며 지역언론과 지방의원, 지역유지들이 ‘박힌 돌’이라 했다.

출향했다 귀향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스스로를 ‘박힌 돌’, ‘굴러온 돌’이라는 정반대로 표현하는 이장과 군수. 그러나 기자가 정작 주목한 것은 이장과 군수의 발언 저변에 숨은 의도였다.

이장의 주장은 마을주민들을 20차례나 고소고발하게 된 근본원인이 자신을 이장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외지유입 주민의 불순한 의도가 개입된 ‘텃세싸움’에서 비롯된 것이고, 군수는 군수대로 자신을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반대세력의 음모로 억울하게 재판을 받고 있으므로 역시 ‘텃세싸움’의 희생양이라는 논리가 깔려 있는 것이다.

기자는 그들의 발언에서 저열한 대한민국 정치문화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해서 소름이 돋았다. 이른바 ‘편 가르기’, ‘갈라치기’다.

선거 때만 되면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보수와 진보, 남과 여, 젊은 층과 노년 층, 학연·지연·혈연 등으로 선을 그어 네 편과 내 편으로 나눈다. 군의원 같은 지방의원선거에서부터 대통령선거까지 심지어 마을이장선거에까지 이 ‘편 가르기’가 판을 친다. 평소에 막역하던 친구와 정을 나누던 이웃이 선거가 다가오면 어느새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하며 이때 악감정은 선거가 끝나도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선거는 누가 죽고 사는 절대절명의 치킨게임이 아니다. 선거는 상대성 게임이다. 선거는 ‘누가 대표자가 되었을 때 유권자인 주민이 더 행복해 질 수 있을 까?’라는 절대명제에서 출발해 더 나은 인물을 고르는 절차이지 정치인들이 맘대로 그은 선으로 유불리에 따라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정치공작이 아니다.

이장과 군수. 마을과 고을을 대표하는 두 인물은 모두 그 지역의 발전과 주민의 행복 도모가 맡은 임무이자 사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록 선거과정에서 온갖 ‘편 가르기’를 통해 당선이 되었더라도 그 때문에 쌓인 ‘반목과 불화’를 청산하고 무엇보다 지역 구성원들의 화합을 도모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물론 이장과 군수가 거론한 그런 갈등은 대한민국 어느 곳이든 존재한다. 그렇다면 선거로든 추천으로든 대표자의 자리에 오른 이장님과 군수님께 여쭤보고 싶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당신들은 과연 얼마나 노력해 보셨습니까?”라고.

자고 나면 인구가 줄어 없어질 위기에 처한 이곳 의령에서 ‘굴러온 돌’이면 어떻고 ‘박힌 돌’이면 어떻단 말인가? 오순도순 함께 어울려 살아도 모자랄 판에 선을 긋고 편을 나누어서 어떡하자는 말인가? 전임자도 아니고 현직에 있는 이장과 군수가 이구동성으로 ‘굴러온 돌과 박힌 돌’ 운운하는 것이 기자에게는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책임회피이자 비겁한 변명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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