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기고] 도구 이제신선생(陶丘 李濟臣) 묘소와 한천정
[독자 기고] 도구 이제신선생(陶丘 李濟臣) 묘소와 한천정
  • 의령 인터넷 뉴스
  • 승인 2022.08.1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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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경환 경남향토사 이사, 의령지회장
사진=신경환 경남향토사 이사, 의령지회장

의령군 대의면 신전리 곡소마을에 있다. 예로부터 땔 나무가 많이 생산되었으므로 섶 밭이라 하였다. 주위가 온통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온갖 땔나무가 많이 나는 곳이다. 지형상으로 정수리에 해당되는 부분이 자굴산인데 산세가 양팔을 길게 뻗은듯하여 그사이 가슴팍에 해당되는 지점이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면소재지에서는 20리 길로 합천땅을 밟고 들어가는 깊은 골짜기 제일 안쪽 마을이다. 요즘은 칠곡면 내조리에서 넘어가는 새 길이 생겨 조금 편리해졌다. 고개를 넘어 곡소마을에 도착하면 마을 뒤 의촌옥씨 재실 마당을 통과, 오른쪽 돌계단을 타고 오르면 양지 산기슭 의춘옥씨 묘역 하단부에 자굴산의 청명산록에 도구 이제신 선생의 묘소가 있다. 그리고 한천정(옥씨재실 오른쪽)은 도구 이제신의 정이다. 후손들의 관리부족으로 퇴락위기에 있어 의촌옥씨 대종회 종무소장님이신 옥치관님께서 1년에 한 번씩 벌초를 하는데 철성이씨 후손은 한사람도 찾는 일이 없으니 종무소장님께서는 매우 서운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리고 후손이 관리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의령 향토사 연구소 위원님들이 협의하여 주변정비를 하고자 한다.

사진 =이제신묘(李濟臣墓: 1510년~1582년)
비석의 높이는 70cm, 폭51cm, 두께 15cm이고 상석은 가로 85cm, 세로53cm, 두께10cm이다.
사진 =묘지석: 처사 고성이공 휘 철성지묘신좌(處士固城李公諱鐵城之墓申坐)
상석은 가로 80cm, 세로 66cm, 두께 15cm이다.

 

 

 

 

 

 

 

 

 

 

 

 

 

 

 

 

이제신 생애

자는 언우(彦遇), 호를 도구라 하니 본관은 철성으로 우군총제 이백의 8세손이다. 그는 중종5년(1510년)에 의춘현에서 태어나고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서 도저히 남이 따를 수 없었다. 일찍이 남명 조식 선생의 문하생이며 그 학문적 명성이 뛰어났다. 이때, 인조임금이 세자로 있으면서 그의 명성을 듣고 한번 만나기를 원하였더니 조정 중신들의 농간에 의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모함의 대상이 되었으나 정사용의 도움으로 위해를 면하였다. 그는 이후 세상사와 인연을 끊고 오직 산수간을 찾아 돌면서 금서를 벗하여 지냈다. 그는 만년의 한때를 남명과 함께 지리산 아래 덕산에 지내게 되었는바, 이때 남명은 그를 가리켜 언우는 나의 늙은 벗이라하여 두사람은 매우 친하게 지냈다 한다. 일찍이 그는 말하기를 멀지않아 이 나라에 큰 난리가 있을 것이라 하였는데 과연 임진년에 이르러 왜란이 일어나 그의 예언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는 또 임오년에 자신이 죽을것이라 하였는데 과연 1582년 임오년에 그는 홀연히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평생에 절찬의 싯귀를 수없이 남겼으니 그가운데 모아동시(毛兒洞時) 한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身居자굴深深谷心對頭流上上峰] 이 몸은 자굴산 심심한 골짜기에 있고 마음은 두류산 상상봉에 있네. 사후 진주의 정강서원에 입향되었다.

사진 =한천정
사진 =한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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