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가선대부 동지 중추부사 허언심 무덤을 찾아서(嘉善大夫 同志 中樞府事 許彦深)
[독자기고]가선대부 동지 중추부사 허언심 무덤을 찾아서(嘉善大夫 同志 中樞府事 許彦深)
  • 의령 인터넷 뉴스
  • 승인 2022.04.1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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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의령의 금속문화 178P를 참고 발췌 하였다.

 

사진=신경환 경남향토사이사, 의령지회장
사진=신경환 경남향토사이사, 의령지회장

◎ 화정면 소재지에서 덕교를 지나 칠곡 방향으로 4km가면 원촌마을이 나오는데 원촌마을 이름으로 쓰는 지역은 대부분 예전의 관원이 공무로 다닐때에 숙식을 제공하던 기관이 원(院)이 있었던 곳인데 가수리의 원천도 예전에 원이 있었던 지역이다. 가수원촌과 관련된 그 밖의 지명은 원안껄배미(원주가 살았건 집터라는 논배미)손배미(나그네들이 기거하는 집터)등이 아직도 전하고 있다. 한 길 따라 새몰마을 가기 전에 원촌마을 바로 뒤 골짜기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분성 허공휘원심지묘가 있다.

▶가선대부 동지 중추부사 분성허공 휘 언심지묘 비의 총높이 190cm, 폭 46cm, 두께 22cm이다. 그리고 상석과 망부석이 있다.

허언심(許彦深) : 1542~?

허언신은 김해인으로 예촌 허원보의 증손이며 망우당 곽재우의 매제가 된다. 고성에서 가례에 이주 정착하였다.

그는 중종 37년(1542년)에 출생하고 선조 25년 임진왜란에는 가재를 털어서 망우당을 도와 의병을 모았다. 이 일로 하여 순변사 이빈은 그의 충성심을 크게 칭찬한바 있으며 임란의 전공은 특히 두드러졌으니 순변사의 장계에 의해 홍패와 집을 하사 받았다.

그해 겨울에는 특별히 동중추의 관직을 제수 받았으나 그는 항상 나라의 표창을 사양하였다.

평란 후에는 향리에 돌아와 압호정을 지어, 자연을 벗하여 자락하다가 세상을 마쳤다.

임란 17의병장의 한분으로 충익사에 곽재우 망우당과 함께 모셔졌다.

사진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분성허공휘언심지묘 (갓얹은 오석비)
사진 =가선대부 동지 중추부사 분성 허공 휘 언심지묘 (갓얹은 오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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