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의 땅 이름 유래와 역사이야기(3)
의령의 땅 이름 유래와 역사이야기(3)
  • 김진수 의령향토문화사
  • 승인 2022.02.22 13: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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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령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김진수
사진=의령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김진수
사람에게 이름이 있는 것과 같이 땅에도 이름이 있다. 의령 지역의 조상들이 이 땅에 정착하며 알맞은 이름을 정하고 사용해 왔다. 땅 이름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세상을 보는 방법, 독특한 자연환경, 고유한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땅 이름은 고장의 문화발전 역사를 담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치 있는 자산을 지키고자 의령의 땅 이름 유래와 역사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이 글은 의령문화원에서 펴낸《우리고장 땅 이름》,《의춘지》, 《의령군지》를 참고했다.

 

○ 남산南山, 배껏장터, 외시(外市)/외장(外場)

‘남산’ 혹은 ‘남산동’은 의령읍 동동리(東洞里)에 속하는 마을이다. 예전에는 여기를 ‘배껏장터[바깥장터]’ 혹은 ‘장터껄’이라고 불렀다. 의령읍성이 있던 시절 읍성 안에 있는 닷새장을 ‘안장’ 혹은 ‘성안장’(內場, 城內場)이라 불렀다. 이 시장과 별개로 성 밖에도 장이 섰는데 이 장을 ‘외시(外市)’ 혹은 ‘외씨’라 불렀다. 일제 강점기 의령 읍내가 정비되면서 현재 시장자리에 새로운 시장이 서고 많은 시장기능이 새 시장에 모이게 되고 외시에는 우시장만 남게 되었다. 이제는 우시장도 무전으로 옮겼다. 옛날 우시장 근처 느티나무 아래 기념비가 두 기 서있었다.

 

○소황제(紹黃堤) 이야기

사진=소항제 비
사진=소항제 비

우시장 근처 현 의령군민회관 근처 느티나무 아래에 있었던 비석 두 기 중에 하나가 바로 소황제(紹黃堤)비다. 옛날 의령은 큰 물줄기가 여러 갈래로 시내를 관통하여 흘러 매년 수해를 입었다. 황덕유 현감 시절 폭우가 내려 읍내가 물에 잠기고 수해로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황현감은 관찰사와 조정에 장계를 올려 수재민 규율과 제방을 축조하는 비용을 얻어왔다. 이 돈으로 의령읍 중앙을 관통하여 흐르던 물길을 가례에서부터 서산 밑으로 돌리고 제방을 쌓았다.

그 후 경자년(1900) 가을 폭우로 인하여 제방이 크게 파손되었다. 이에 정봉시(鄭鳳時) 군수가 신축년(1901)에 백방으로 애를 써서 재난을 당한 사람이나 빈민을 돕는 데 쓰는 쌀을 확보하고 수재민을 도우는 한편 대대적인 제방 복구공사를 했다. 특별히 빈민구호를 위하여 주거지 정리사업과 치산치수 사업을 하여 읍 안팎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이에 지역 주민들이 정 군수의 착한 정치를 기리고자 선정비를 세우려 했으나 정 군수는 끝까지 사양하고 제방복구에 대한 표지석만 세우기로 했다. 그때 세운 것이 바로 소황제(紹黃堤)라는 작은 기념비이다. 이 비석은 황덕유 현감(黃)의 애민정신을 이어(紹) 개축한 의령의 제방(堤)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비석의 앞면에는 소황제(紹黃堤) 세 글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정봉시 군수가 쓴 소황제기(紹黃堤記)가 있다. 글의 끝에 辛丑夏知郡鄭鳳時書라고 쓰여 있어 건립연대와 글쓴이를 알 수 있다.

정 군수가 2년 근무하고 임인년(1902) 의령을 떠나자 지역 주민들이 송덕비 대신 생사당(生祠堂)을 지어 그의 공덕을 기억했다. 생사당이란 감사나 수령 등의 착한 정치를 찬양하는 표시로 그가 살아 있을 때부터 백성들이 제사 지내는 사당이다. 역사에 전무후무한 이 생사당은 옛 읍성남문 근처 현재 일육상회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준공기념비(竣功記念碑)

사진 = 준공기념비
사진 = 준공기념비

일제 강점기에 현 의령천에 토사가 쌓여 바닥이 점점 높아지고 제방이 유실되어 1926년에 바닥의 모래와 자갈을 파내고 제방 보수를 했다. 파낸 모래와 자갈로 읍내 저지대를 메워 그곳에 시장을 만든 것이 현 의령시장이다. 이 사업의 준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 바로 준공기념비이다.

이 비석은 아담하고 단정한 소황제 비석과 달리 우람하고 요란한 자연석에 공사와 관련한 많은 것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앞면에는 준공기념(竣功記念)이란 글자와 공사와 관련한 글이 새겨져 있다. 비석 뒷면에는 경상남도지사(慶尙南道知事) 和田 純, 의령경찰서장 成田徹定, 의령면장 강정희(姜正熙)등 이 공사와 관련 있는 사람들 이름이 있다. 특이한 점은 제방보수에 기여한 유지(有志)이름이 있는데 이우식(李祐植), 노규동(盧奎東), 김영대(金永大) 등 한국인과 일본인 이름이 있다. 이우식 선생이 지역민의 안녕을 위하여 여러모로 애쓴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뒷면 끝에는 大正十五年 丙寅(1926) 七月 二十六日이라 적혀 있다.

소황제비와 준공기념비는 현재 의령읍 입구 82전국체전기념비(무전리 124-11) 옆에 세워져 있다. 의령 역사에 중요한 비석이 접근하기 어렵고 찾는 사람도 없는 구석진 곳에 버려져 있는 느낌이다. 유물은 원래 있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름답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원래 자리로 옮기고 안내판을 세워 그 내용을 알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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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준 2022-02-22 17:15:59
기념비를 잘 유지해서 역사에 길이 남으면 좋겠습니다 ~ ^^